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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집 비디오 [뱀파이어]와 [에일리언]
    영화의 회상 2023. 2. 20. 19:23

     

    어린 시절, 엄마의 친구가 나보고 놀러오라고 했다. 그러니까 동네 아줌마 하나가 자신의 집에 꼬마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그집 아이들은 남자 형제라서 나랑 여동생은 관심 없어 하던 집이었는데, 엄마의 친한 친구인 아줌마가 남녀 불문하고 열 명쯤의 꼬마들을 불러모으니 안갈 수는 없었다. 뭔가 하고 가봤더니 자기네 집 비디오 플레이어 자랑이었다. 새로 산 기계에서 영화를 틀 수 있다고 했다.

     

    그집 안방 텔레비전 앞에 열 명의 꼬마들이 모여 앉아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아줌마가 틀어준 영화를 보았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본 비디오 영화였다. 아직 비디오 대여점도 성행하기 전인데, 비디오 테이프가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질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내용도 너무 이상했다. 그 동안 주말의 명화에서 보던 아기자기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무려 사람을 빨아먹는 괴물 이야기였다.

     

    벌거벗은 미녀가 입을 벌리더니 홀린 표정의 남자와 접촉하면서 뭐를 쫙 빨아들이거나 곤충을 거대화시킨 괴물이 어디선가 펄쩍 나타나서 사람을 콱 찔렀다. 뱀파이어와 에일리언을 동시에 본 것이다. 처음에 아줌마가 아무 생각없이 뱀파이어 영화를 틀었는데 갑자기 벌거벗은 미녀가 나타나고 성애적인 살인 장면이 이어졌다. 꼬마들이 놀라서 입을 헤 벌리자 아줌마는 당혹스러워 하며 얼른 테이프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고심하다가 튼 다른 테이프가 에일리언이었다. 

     

    그 영화도 충격적이긴 했다. SF도, 괴수물도, 잔혹물도, 공포영화도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꼬마들은 딱히 무서워하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저게 뭐냐?' 하는 심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화면을 해석하고 반응하기는 이해도 경험도 부족했다. [전설의 고향] 같은 공포물에는 익숙했고 어디서 무서워해야 하는지, 어디서 호기심이나 짜릿함을 느껴야 하는지 학습돼 있었지만 [뱀파이어]나 [에일리언]을 보면서는 생경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에 보았던 강렬한 장면들이 아직 뇌리에 생생하다. 그때 느꼈던 놀라움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겁에 질리거나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은 충격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후 내가 공포영화 마니아가 되었다고 해야 전개가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난 꽤 빨리 그쪽이 내 취향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잔혹물도 공포물도 거의 보지 않는다. 

     

    억지로 보게 되면 피곤해진달까. 그래서 공포물을 좋아하는 팬들이 나에겐 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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