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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의 영화와 생과자
    영화의 회상 2022. 8. 8. 22:02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토요일 저녁이면 안방에 모여 ‘주말의 명화’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방송국에서 한국 성우들이 더빙한, 유명 할리우드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여주는 거였다. 그 당시 한국인들이 영화를 보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극장에 가서 (자막이 달린) 영화를 보거나 텔레비전 방송으로 ‘주말의 명화’를 보거나.

    나의 부모는 꽤 영화를 좋아했지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 가지는 않았다. 그저 토요일 저녁에 식사를 하고 나서 다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과일을 깎아먹으며 남이 선택한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일요일 낮에도 영화를 틀어주는 편성이 있었지만 우리집은 성당에 가서 오래 시간을 보내다가 올 때가 많았으므로, 그건 잘 보지 못했다.

    주말 저녁에 어떤 영화들을 보았는지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긴 한다. 약간 늦은 시간이라 아마 주로 성인 대상 영화였을 것이다. [벤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게 아니었을까? 당시 나랑 여동생은 엄마 아빠와 함께 안방에서 자던 나이였다. 같이 영화를 보다가 나랑 여동생은 먼저 잠들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문득 깨어났다. 지금이야 밤에 자면서 대여섯 번은 깨어나는 듯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자다가 깨는 일은 무척 드물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한번 감았다 떠보면 어느새 아침이 되었으니까.

    눈을 떠보니 안방의 요 위였는데 형광등이 무척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와 아빠가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이럴 때 primal scene을 목격한다던데, 나는 그건 한 번도 보거나 눈치 챈 적 없다. 나중에 엄마를 통해 들은 적은 있어도..

    아무튼 깨어나서 엄마 아빠를 보니 둘이 숨죽이고 뭔가를 먹고 있었다. 나는 잠투정을 하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앗, 뭘 먹고 있는 거야!” 그건 난생 처음 보는 예쁘게 생긴 음식이었다. 엄마 아빠의 말에 따르면 ‘생과자’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컵케익’이었다. 케이크용 빵에 크림을 올린 과자류를 그때는 생과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마 아빠가 회사 근처의 백화점에서 사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걸 둘이서만 먹고 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줘!” 어쨌든 그때부터는 셋이 같이 맛있게 먹었다. 조그만 케이크인 셈이었지만, 모양이 색달라서인지 난생 처음 맛보는 음식처럼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이 일어났을 때 나는 뻐기면서 동생을 약올렸다. 어젯밤에 우리 셋만 맛있는 걸 먹었노라고. 동생은 그럴리가 없다면서 믿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내가 쓰레기통으로 데려가서 남은 증거를 보여주었다. 상자에 색색의 크림이 묻어 있었다.

    그제야 동생은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가 열심히 달랬다. “네가 영화를 보다가 잠들어 버려서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그렇다면 왜 우리가 잠들기 전에 과자를 가져오지 않았단 말인가? 잠시 잊어버려서? 하지만 우리가 잠들었더라도 깨우면 우린 기뻐하며 일어나 과자를 먹었을 텐데?

    교훈이 하나 생겼다. 영화를 보다가 자면 안 된다는 것. 그래서일까, 난 영화를 보다가 잠들거나 존 적이 거의 없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차라리 잠이 왔으면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냥 나와 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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