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처음 극장에 가서 본 영화는 [미션]이었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갔었다. 내가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그런지 엄청 감동적으로 봤던 천주교 관련 내용이었는데, 성당에서 단체 관람을 간 영화는 아니었다. 초등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간 거였다. 어린 마음에도 왜 학교에서 종교 영화를 단체 관람 하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학교는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거창한 생각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얼마전에, 평일 오후에 지하철역으로 가다가 입구에서 십대 청소년들이 우르르 나오는 걸 보았다. 교사로 보이는 인솔자도 눈에 띄었다. 여기는 도심이니 소풍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나는 호기심을 못 참고 한 명을 붙들고 물어 보았다. “학생, 다들 어디 가는 거예요?” 그러자 붙들린 소녀는 약간 놀라며 “영화 보러 가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요즘도 학교에서 영화 단체 관람을 가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 학교의 단체 관람용으로 선택되는 영화는 늘 좀 뜬금없었다. 칸 영화제 같은 데서 큰 상을 받았다거나 엄청 흥행을 했다거나 하면서 아동 관람가 등급이면 그냥 채택이 됐던 거다. 게다가 [미션]은 봉사, 희생, 숭고함과 정의의 추구 같은 주제가 단체 생활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도덕심을 고취시키기엔 괜찮았을 영화였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니만큼 인상이 강하기도 했고, 그후에도 종종 접할 기회가 있어서 대강의 내용을 잊지 않았긴 하지만, 지금 [미션]에서 정확히 기억나는 장면은 하나뿐이다. 밀림의 원주민 마을에서 갈색 피부의 소년이 나무 등걸 같은 데 올라서서 찬송가 아리아 를 부르고 그걸 지켜보던 백인 군인이 불경하다며 끌어내리던 장면.
난 그 장면을 보며 같은 어린이로서 깜짝 놀라고 분노했다. 뭐, 분노하라고 만든 장면이었지만. 그래서 그후 군인 출신의 선교사가 본국 식민주의자들에게 저항해 원주민 마을을 지키는 데 앞장선, 처절한 전투 장면이 더욱 비극으로 다가왔고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었다. 음…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오래 전에 본 영화이면서도 꽤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한 동안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꽤 모호하지만 또 아주 명쾌한 단 한 가지를 기준으로 평가를 내리곤 했다.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간다.’ 예술 공부를 오래 하고 거의 반평생을 관련 분야에서 일해온 후, 예술에 회의를 느끼에 된 자의 관점인 것이다. 즉 예술성을 더 이상 믿지 않고 특정 메시지의 도구로서만 예술 작품들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러면서도 오히려 ‘도구로서의 예술’을 긍정하게 되면서부터 그렇게 됐다.
[미션]은 왜 만들었는지가 명확한 영화였다. 숭고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찬양하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서. 크.. 이데올로기라는 말 오랜만에 쓴다. 하여간 단순한 종교 영화가 아니라 공동체적 가치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가장 비실용적인) 단계의 가치(기독교적 이상)를 세뇌시키기 위한..
쩝, 너무 나갔다. 요즘 내가 끈질기게 생각하고 있는 주제라서 그랬다. 타인들에게 이타심을 설파하는 자들이 실은 가장 이기적인 자들이 아닐까 하는 불신… 그리고 내 인생 최초의 영화, 내가 제목과 내용을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가 [미션]이라는 사실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쳐온 것일까 하는 회의.
사실 그렇게 자주 생각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폭포수 위로 떨어지는 장면을 담은 포스터와 함께 문득문득 마주치거나 생각 나는 영화다. 영화를 주제로 내 인생을 한 번 돌아보자 싶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였을 정도로.
오래전 어느 예능 프로에서 일군의 남자들이 합창 미션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무한도전과 비슷한 포맷의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합창 해보기’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때 그들이 부르게 된 합창곡이 영화 [미션]의 주제곡으로 삽입되었던 ‘넬라판타지아’였다. 그렇게 열심히 보지는 않았지만 텔레비전을 틀면 자주 재방송되어서 나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됐다.
그때 약간 열풍 가까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시청자들은 무슨 마음으로 그들의 합창 도전에 감동하고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을까? 그냥 멜로디가 예쁘고 신비로워서 선택되었을 뿐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합창’이라는, 공동체적 예술 활동 도전에 딱 어울리는 선곡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