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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라군] 혹은 [파라다이스]와 미성년자의 성영화의 회상 2024. 10. 24. 18:30
원래는 브룩 실즈의 [블루 라군]이었다. 이 영화도 역시 주말에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던 해외(미국)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여객선을 타고 대양을 횡단하던 어린 소녀와 소년이 적도 부근의 무인도에서 조난을 당한다. 소녀와 소년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존해 둘만의 섬을 가꿔 나간다.
사실 그 영화의 메인 이벤트는 10대 초반의 성애와 출산이었다. 아직 어린 상태에서 조난당한 소년과 소녀지만 점점 사춘기가 되면서 성에 눈을 뜨고 결국 출산까지 하는 과정이 꽤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영화니만큼 노골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아직 10대가 되기 전에 영화를 보게 되었던 나는, 그 과정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집중해서 보았다.
점차 소녀를 피하고 혼자서 몰래 수상한 짓(자위)을 하기 시작한 소년, 그런 그를 비난하던 소녀가 어느 날 사고처럼 소년과 몸을 맞대게 되고, 그러다가 시간이 좀 흘러 이번에는 소녀가 소년을 슬슬 피하고, 이번에는 그런 그녀를 소년이 비난하고, 소녀는 자신의 몸이 느끼는 이상 증세를 호소하다가 결국 출산을 하게 된다. 경악하며 아기를 안아든 소녀와 소년의 눈에 점차 깨달음이 찾아들고, 그 뒤로 두 청소년은 자신들의 생존뿐 아니라 양육 방법도 배워간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아이까지 출산하고 말이다.
그 이야기가 몹시 아름다운 열대 섬의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몹시 예쁜 소녀 소년 배우들의 나신과 다름없는 차림도 한몫하면서 잊을 수 없는, 태초의 장면 같은 그림을 그려낸다. 매우 단순하고도 뻔한 줄거리지만 영상으로 제작되었을 때 발휘될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덕분인지 자주 리메이크되었다. 원작은 20세기초 아일랜드 작가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성애) 소설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푸른 산호초]라는 제목의 영화로 개봉되었고 어린 여배우 브룩 실즈를 세계적 스타로 만드 작품이다. 내가 본 영화도 이 작품이다.
하지만 이후에 원주민들과 얽히는 속편 이야기까지 더해져 제작된 피비 케츠의 [파라다이스]라는 영화가 더 유명해졌고, 동명의 팝송까지 히트해서, 나도 이 제목으로 지금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더 잘 어울리고 기억하기 쉬운 제목이기도 해서 말이다. 그러나 나의 뇌리에 가장 깊이 남은 건 [블루 라군], 즉 [푸른 산호초]의 마지막 장면이다.
소녀와 소년이 낙원 섬의 자연과 하나된 듯 성장하며 가족까지 일궈 가던 어느 날, 해안가 저 멀리에 배가 나타난다. 모래 사장에서 아기들과 놀던 중 그 배를 발견한 아이들. 당황하던 것도 잠시, 그들을 눈빛을 서늘하게 굳히며 아기들을 한명씩 안아든다. 정확히는 소녀는 아기를 안아올리고, 소년은 그보다 좀 큰 아기의 손을 잡고 걸리며 뒤를 돌았다. 배에 등을 돌리고 천천히 멀어지며 섬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 배는 바로 소년 소녀의 부모들이 탄 배였고 그들은 몇 년째 포기하지 않고 아들과 딸을 찾는 중이었다. 그들은 망원경으로 바닷가를 훑다가 소년과 소녀와 아기들을 발견하지만, 진흙투성이 모습을 보고서 중얼거린다. "그냥 원주민 가족인가봐…"
이제는 더 이상 [블루 라군]의 리메이크작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 내용 자체도 문제지만, 더 이상 그 나이의 소년 소녀 배우를 그런 역할로 등장시키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설 [블루 라군]이 출간되었을 당시는 19세기의 억압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막 성적 자유에 대한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던 20세기 초였다고 하는데,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그 즈음인가 싶다.
21세기가 되면서, 매체에 따라서는, 성적인 표현이 더욱 거침없어지고 규제도 비난도 사라졌지만, 대신 구분, 구획은 촘촘 빽빽하게 엄격해지고 금기는 절대적이 되었다. 이제 극장 개봉 영화에서, 혹은 주류 간행물에서 성애적 장면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산업화 완료 후의 국가에서 청소년의 노골적 성 표현은 규제와 계도, 혹은 치료와 처벌로만 다뤄지는 것으로 완전히 안착되었다. 그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사실상 그래서 모두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음지 아닌 음지로 숨어든, 혹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매체를 발견한 성애 표현 욕구와 감상 욕구는 여전히 활발하다. 방식에 따라서는, 일정 정도 인정과 대우도 받는다. 이럴 때 옛날 영화 [푸른 산호초]의 결말이 여전히 나의 머릿속에 진득하게 남아 있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자신들을 찾으러온 어른들에게 등을 돌리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던 소년 소녀의 서늘한 눈빛이, 이상한 방식으로 지금 중년의 내 마음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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