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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본 연인의 비극 [흑인 오르페]영화의 회상 2024. 11. 14. 16:31
많은 아이들이 그랬겠지만 나에게 유년 시절은 TV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던 시기였다. 그 시절 좋아했던 만화영화들은 장난꾸러기들의 모험 서사가 대부분이었는데, 가끔 공주,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나와도, 그건 정말 사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창구의 개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때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추억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왠지 지금의 나는, 내가 큰 다음에는, 그런 영화들을 돌이켜 봐도 그다지 감흥이, 글을 쓸 정도의 느낌이 일어나질 않는다. 심지어 지금도 어린이들의 모험 영화 같은 것은 꽤 좋아하는 장르에 속하는데도 말이다.
어린 시절의 영화들을 돌이켜 보려 하면, 우연히 본 ‘성인’ 영화들만 몇 편씩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 빈티지스럽던 화면의 색채나, 그 주변 집구석의 먼지를 비추던 햇빛의 냄새 같은 것들까지 또렷해지는 듯하다. 그 가운데서도 선명한 장면은, 꼬마 흑인 아이 둘이 새벽녁에 언덕에 올라가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기타를 튕기던 장면이다. 그리고 [흑인 오르페]라는, 당시의 아이로서는 정말 낯설었을 영화 제목까지도 잘 기억이 난다.
비극적인 연인들의 사랑과 죽음을 밤새 지켜본 꼬마 둘이서,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자고, 그래서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수 있도록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기타를 가지고 어서 어서 높은 곳으로,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그리고 해가 떠오를 곳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연주해야 한다고, 엎치락 뒤치락 뛰어오른 아이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줄을 튕기던 장면이었다.
우연히 티비에서 하는 그 흑백 영화를 보고 어린 시절의 난 넋을 빼앗겨 버렸다. 브라질을 배경으로 현란한 삼바 축제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절절한 연인의 사연도 더해졌으니까. 아마도 자라면서 여러 번 기억을 다시 떠올렸고 여건이 된 후에는 정보를 찾아보았을 것이다. 알고 보니 [흑인 오르페]는 무려 1950년대에 만들어져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였는데, 아직도 언급하는 평론가들이 꽤 있을 정도로, 독특한 에너지로 들끓는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삼았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죽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지옥에 내려간 남편의 이야기다. 죽음의 신을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로 달래서 간신이 허락을 받고, 대신에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지만, 결국…
지금 찾아보니 [흑인 오르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하고 전차 차장으로 일하는 오르페와 시골에서 상경한 유리디스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단다. 내가 기억하는 꼬마들은 어느 시점부터 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다시 영화를 정주행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도 가끔 사운드 트랙을 듣는다. 어쩌면 이 영화는 내게 음악으로 남은 영화인지도 모른다. 비극적 연인이란 문학적이거나 영화적인 소재보다는 음악적인 감성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 영화가 꽤 많다.
아름다운 아침
Morning, so beautiful morning
Manhã, tão bonita manhã
행복한 하루의 도착
Of a happy day that has arrived
De um dia feliz que chegou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고
The sun in the sky came up
O sol no céu surgiu
카니발의 아침
Manha de Carnaval
모든 색채를 비추는 태양
And in every color it shone
E em cada cor brilhou
그러면 꿈이 다시 돌아오네
Then the dream came back
Voltou o sonho então
심장속으로
to the heart
Ao coração
행복한 하루가 끝난 후
after this happy day
Depois deste dia feliz
다른 날이 더 있을지는 모르겠네
I don't know if there will be another day
Não sei se outro dia haverá
그래도 우리의 아침은 너무나 아름다워
It's our morning, so beautiful after all
É nossa manhã, tão bela afinal
카니발의 아침
carnival morning
Manhã de carnaval
나의 심장을 울리네
sing my heart
Canta o meu coração
기쁨이 돌아왔으니 너무 행복해
Joy has returned, so happy
A alegria voltou, tão feliz
사랑의 아침이여
the morning of this love
A manhã desse amor
https://www.youtube.com/watch?v=69zby6u-Y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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